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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선교의 실상!

관리자 0 07.0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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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7시 40분 경 샤밧 예배를 드리기 위해

유대인 교회로 들어가는 사람들

(ONM뉴스 - 조명심 기자)


이스라엘 선교의 문제

선교사는 많은 데, 선교는 없다.

이스라엘에 갈 때 마다 느끼는 게 한 가지 있다. 선교사는 많은 데, 실제 복음을 전하는 선교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특정한 국가에 선교사로 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불타는 사명 때문이다. 복음 전파를 위해 한국 교회는 막대한 재정과 자원을 쏟아 붓다시피 하며 선교사를 파송한다.

매년 이스라엘에 오는 선교사는 줄지 않는다. 한국에서 이스라엘 정치적 상황이 위험하다는 언론 보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은 이스라엘에 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는 많아도 실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대략적으로 알려진 사역은 알리야, 구제사역, 기도사역, 그리고 관광지 가이드 정도가 전부다. 선교 내용은 이후 보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게 어떤 종류이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스라엘은 신의 나라, 성서의 나라, 성지의 나라로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전하기에 불편한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선교는 주로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전하는 방식이다. 교육과 의료를 통해 빈곤계층에 예수님의 실천적 사랑을 전하고, 그후에 복음을 전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높다. 미국 부자들 대부분은 유대인들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금융가는 물론이요, 모든 분야의 최고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유대인이다. 그러니 어줍잖은 재정을 앞세워 그들에게 구제니 뭐니 할 수 없는 것이 이스라엘 선교의 실정이다.

또한 이스라엘은 성서의 나라다. 유대인에게 토라는 일상이요, 상식이다. 나이가 5세가 되는 순간부터 토라를 암송한다. 그런 그들에게 토라, 즉 하나님 말씀은 그들이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신학을 앞세우고, 바울의 신학을 근거삼아 토라가 유대인만이 아닌 이방인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내세워도 통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선교하기 위해서는 이런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하는 데 선교사들 수준이 그정도는 아니다.

비자는 있고, 복음은 없다

이스라엘 선교의 고충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이방인들이 현지에서 살기에 매우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작은 면적에 굳이 외국인들이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은 관광 수입이 막대하다. 성지의 나라로 외국 기독교인들 관광은 실로 엄청날 정도의 규모를 자랑한다. 돈 만 쓰고 가는 관광 정책은 언제나 환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필요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 정부 정책인 셈이다. 벤구리온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할 때 이스라엘은 모든 관광객에게 3개월의 비자를 발급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그들의 계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선교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런 그들의 비자 정책을 알지 못하고서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비자를 발급하는 데 있어서 제한이 많다.한국 선교사들이 비자를 발급받는 경우는 주로 학생 비자로 히브리대학교에서 울판이라고 하는 언어 과정에 등록해야 가능하다. 그것도 학기 때 마다 받는 것으로 1년이 고작이다. 언어 과정은 가장 기초 단계인 알렙부터 베트, 기멜, 달렛, 고급 과정인 헤 등의 단계가 있다. 이들 단계를 거치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르는 데 이게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학기가 끝나도 비자 발급을 받는냐는 것이 이들의 최고의 관심사다. 이스라엘에 머물기 위해서는 학생 비자가 필수적이요, 학생 비자는 최장 5년에서 10년 동안 연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종교비자는 미국의 남침례 및 나자렛 교단에서 많이 받는다고 한다. 선교사 가운데 알리야 사역을 위해 남침례 교단에서 파송한 평신도 선교사 한 사람만이 종교비자를 얻은 것 외에 거의 없다고 한다.

선교사의 이스라엘 생활은 비자와의 싸움이라고 할 정도라는 게 선교사들의 공통적으로 전하는 말이다. 즉 비자 발급이 그들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한인 사회는 있는 데, 구심점은 없다.

참고로 이스라엘 한인 사회가 구심점이 없는 것도 바로 이 비자 때문이라고 한다. 선교사마다 각자 비자 발급 받는 루트나 요령이 달라, 그것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한다는 것이다. 만약 비자발급을 공유했다가 자신의 비자 발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행한 것은 히브리대가 아닌 홀리랜드 holyland라고 하는 미국계 학교가 히브리대와 제휴하여 한국 선교사들의 비자 발급의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히브리대학교 울판 과정의 학비가 연간 6천불인 데 비해 홀리랜드는 그 보다 훨씬 비싼 연간 2만불에 달할 정도다.그래도 비자 발급이 용이해서 어쩔 수 없이 홀리랜드에 적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이구동성이다.

두번째는 언어의 장벽이다. 한국 선교사 가운데 히브리어가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다. 보통 5년이 넘어도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 언어의 장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할 정도다.

세번째는 토라, 즉 성서의 지식이다. 한국에서 어떤 신학을 했든지 성서의 나라에 와서 토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학은 헬라적이다. 따라서 그 신학을 배경 삼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선교사 타이틀은 있는 데, 사명은 없다

네번째는 이스라엘 한인사회다. 어느 나라나 이민사회는 구심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역할은 주로 어느 나라 주재 한인 사회가 맡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이스라엘 사회도 한인 사회가 있다. 그러나 활동은 미미하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에서 한인들의 구심점이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은 교단도, 지역도 천차만별이다. 이들 모두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타국에서 혼자서 행동하는 것은 그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하다. 영향력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연합 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선교사들 사이에서 불신과 반목이 팽배하는 까닭이다.

오히려 서로 만나는 것이 더 손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다섯번째는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 생존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물가는 세계에서 최고를 다툴 정도로 악명이 높다. 한국에서 아이스크림 500원 짜리가 여기서는 7세겔이다. 말이 아이스크림이지 얼음에 색고만 입힌 얼음과자 수준이다. 1세겔은 한화로 약 330원 정도다. 따라 약 2500원이 되는 셈이다. 단체로 온 한국 관광객이 멋도 모르고 아이스크림 한 턱 쏜다고 했다가 그 다음 부터는 그런 소리가 아예 사라졌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물가가 최악이다.

여섯번째는 이스라엘에서 선교 활동을 비롯한 갖가지 통계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통계가 없다. 어디에도 그것을 관장할 수 있는 단체가 없는 것도 이유긴 하지만 선교사들에게 그런 것은 전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원인이다.

한국 선교사들의 주 목적은 어느 순간 히브리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히브리대는 세계 100위 권에 들어갈 정도의 뛰어난 학교다. 한국 선교사들이 히브리대에서 공부하는 것은 거의 언어 과정이다. 선교사들에 따르면 정식 과정을 거쳐서 박사 학위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만약 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한인 사회에서 소개할 정도라고 하니 그 과정이 어렵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히브리대에서 박사과정, 어떤 과정을 하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마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식으로 광고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선교 열정은 있는 데, 전략은 없다.

일곱번째는 한국 교회가 이스라엘 사회를 전혀 모른 채 무조건 금전적인 후원만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 관광도 가이드 하는 선교사들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선교는 지금까지 모든 선교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전까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수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종합 선교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선교방식만으로는 이스라엘을 선교할 수 없다는 것이 현지 선교사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지만 그 구원의 통로, 즉 구원을 위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교사가 한다. 듣지 않는 데 어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냐고 한 바울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의 선교는 마지막 종착지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선교 방식이나, 선교사들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이스라엘에서 바라 본 실상이다.

이스라엘 선교를 위해서 있어야 할 것은 당연히 복음에 대한 열정과 그것을 실천하려는 사명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스라엘 사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막연한 열정과 기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 전략은 현지 선교사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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